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 전성시대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 전성시대


 

1929년은 극적인 월드시리즈로도 유명하다. NL에서는 슬러거 핵 윌슨과 베테랑 로저 혼스비가 맹활약을 펼친 시카고 커브스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무려 10.5게임차로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윌슨은 39홈런 159타점으로 활약했고, 혼스비도 39홈런에 3할8푼의 타율을 기록했다.

1929년 AL에서는 한동안 바닥을 헤매던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가 15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28년째 감독생활을 하팝코니 맥이 이끄는 에이스는 알 시몬스, 지미 폭스, 레프티 그물 등의 활약으로 흔들리던 양키스를 무려 18게임차로 제치고 압도적으로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그로브는 20승에 방어율파 탈삼진까지 모두 1위에 오르는 투수 3관왕을 차지했다.

팽하리라 예상의 월드시리즈는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의 맥 감독이 무명의 하워드 엠키를 1차전 선발로 내세우면서 커브스가 꼬이기 시작했다. 정규 시즌에 55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였던 엠키는 투수 전 끝에 3-1의 승리를 이끌어내며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가 기선을 제압했다. 2차전 역시 에이스의 9-3 압승. 커브스는 3차전에서야 3-1로 첫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운명의 4차전, 커브스는 80의 큰 리드를 잡고 분위기를 확실하게 반전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에이스는 7회말에 무려 10점을 뽑아 월드시리즈 사상 최다 점수차의 역전극을 이끌어내며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다.

안간힘을 다한 커브스는 5차전에서 3회까지 2-0 의 리드를 잡고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의 저력은 대단했다. 9회말 뮬하스의 2점포로 동점을 만든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는 시몬스와 빌 밀러의 연속 안타로 경기를 뒤집어 4승1패로 커브스를 일축하고 챔피언에 올랐다.

 




레프티 그로브

1900년 메릴랜드 주에서 태어난 '레프티'의 본명은 로버트 모세스 그로브다. 그러나 워낙 뛰어난 왼손 투수였기 때문에 아예 '레프티(Left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1920년 중반 마이너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반 시즌 만에 12승2패를 기록하더니 다음 4년간 25승, 18승, 27층, 27승을 각각 거뒀다.

그로브를 발굴했던 오리올스 구단주 잭 던은 MLB 팀들의 애절한 구애를 모두 뿌리치다가 결국 1925년 10만500달러를 받고 필라델피아 에이스에 그로브의 보유권을 넘겼다. 당시까지 최고액수의 이적료였다.

빅리그 데뷔 첫해 부상으로 10승13패에 그쳤던 그로브는 1926년부터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통산 9번의 방어율왕을 차지하는 대기록 행진을 시작한다. 19281년에 24승을 거둔 그로브는 두 번이나 공 9개로 삼진 3개를 잡고 이닝을 끝내는 기록도 세웠다. 생애 동안 9구 3삼진 이닝 기을 두 번 세운 투수는 그로브에 이어 샌디 코팩스와 놀란 라이썰뿐이다.

페이스는 1929년부터 3년 연속 AL 우승에, 1929년과 30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는데 그로브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그 3년 동안 그로브는 20승6패, 28승5패, 31승4패를 각각 기록했으며, 1930년과 31년 연속으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

통상 300승141패 방어율 3.06. 2266탈삼진 기록으로 은퇴한 그로브는 1947년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으며, 1975년에 사망했다.




 

1930년에는 대공황의 암울함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지만 베이브루스의 인기는 여전했다. 양키스는 사상 최고액인 8만 달러의 연봉에 루스와 재계약했다. 요즘이야 빅리거 평균 연봉이 300만 달러를 넘어설 기세지만 당시만 해도 8만 달러는 엄청난 액수였다.

타자들의 전성시대도 여전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타자들의 강세는 1930년 극에 달했다. 무려 71명의 타자가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아예 팀 타율이 3할을 넘은 팀이 9개나 됐다.

커브스의 핵 윌슨은 하향세의 루스를 제치고 당대 최고의 강타자로 떠오르며 3할5푼6리에 56홈런,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인 191타점을 기록했다. 뉴욕 자이언츠의 빌 테리는 레프티 오둘이 세웠던 NL 최다 안타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254안타를 쳤을 뿐 아니라 4할1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테리는 여전히 NL의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1년 야구공의 반발력을 크게 줄임으로서 타자들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1930년의 페넌트레이스는 팽팽했다. 핵 윌슨의 타격을 앞세운 커브스가 NL 2연패를 노렸지만 노장들로 구성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따라잡지 못했다. 벌리 그라임스 투수와 제시'팝' 헤인스, 프랭키 프리치 등 노장들의 활약 속에 카디널스는 커브스를 2게임차로 겨우 제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AL에서는 막강한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가 워싱턴 세네터스를 8게임차로 제치고 2연패를 달성했다. 알 시몬스는 3할8푼1리로 타격왕을 차지하며 165타점을 올렸다. 팀의 에이스 레프티 그로브는 28승으로 페넌트레이스를 주도했다.

1930시즌이 무시무시한 타격의 해였지만 발군의 투수력 앞에는 역시 강타선도 당할 수 없는 법이다. 월드시리즈는 투수전 양상 끝에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의 레프티 그로브와 조지 언쇼우가 각각 2승씩을 거두며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의 4승2패 승리로 끝났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게임은 5차전이었다. 시리즈는 2승2패로 팽팽했고, 승부의 고비인 5차전은 8회까지 0-0 의 숨 가쁜 투수전이 전개되며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최강 투수 레프티 그로브에 맞서 카디널스의 그라임스도 8회까지 에이스 타선을 잘 틀어막았다. 그러나 운명의 9회초, 지미 폭스가 결승 홈런을 때리면서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가 2-0으로 승리했고, 6차전에서도 7-1 완승을 거두며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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