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문화, 하나의 럭비

두 개의 문화, 하나의 럭비


혹시 '올블랙스All Blacks'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모두all' '검다black'는 의미처럼, 아래위 모두 검정색 유니폼을 입는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의 별명이에요. 한국인들이 한국 축구 대표 팀을 '태극전사'라고 부르는 것처럼, 뉴질랜드 사람들은 뉴질랜드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럭비 국가 대표팀을 '올블랙스'라고 불러요.

올블랙스는 전 세계 럭비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그 첫 번째 비결은 일품으로 평가받는 럭비 실력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더! 올블랙스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상대 선수들 앞에서 펼치는 ‘하카Haka'라는 독특한 의식 덕분이기도 해요.

'하카'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이에요. 마오리족은 전쟁에 나서기 전에, 또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때 '하카'를 하곤 했대요. 그런데 이런 전통 의식이 어떻게 오늘날의 스포츠 경기에 함께하게 된 것일까요? 잠시 뉴질랜드 역사를 살펴볼까요?

자신들이 사는 땅을 '아오테아로아'라고 불렀지요. 마오리어로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17세기 이 땅을 유럽인이 알게 됐고, 19세기부터 영국 사람들이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원래 섬의 주인이었던 마오리 부족들과 다툼이 잦아져요. '마오리'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땅을 '파케하'(영국계 이주민들에 대한 마오리식 표현)에게 빼앗겼다며 이를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투쟁해 왔어요. 하지만 '마오리'와 '파케하'라는 두 개의 문화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사이, 서로 배우는 것들도 있었겠지요? '럭비'와 '하카'가 그래요. 영국에서 온 스포츠 럭비와, 마오리의 전통 의식 하카가 만나게 된 거예요.

1888년에 20명의 마오리와 6명의 파케하로 구성된 뉴질랜드 럭비 팀이 영국으로 처음 원정 경기를 떠났어요. 이들은 압도적인 경기력뿐 아니라 신비한 '하카' 동작으로 럭비의 고향인 영국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대요. 바로 그때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카는 뉴질랜드의 최고 인기 스포츠 팀인 올블랙스의 상징이자 뉴질랜드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된 거예요.

하카는 마오리족의 혈통을 가진 선수 또는 주장이 이끌어요. 나머지 선수들은 정해진 몸동작에 따라 함께 손으로 자신의 무릎, 가슴을 때리기도 하고, 팔을 치기도 하면서 우렁찬 기합을 내질러요. 눈을 부릅뜨고 혀를 쭉 뽑아 내밀면서 팀의 사기를 높이고 상대 팀의 기를 꺾어 놓기도 해요.

'마오리'와 '파케하', 두 개의 문화가 섞여 있는 뉴질랜드에서 올블랙스가 보여 주는 하카는 인종, 문화와 관계없이 뉴질랜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마오리 혈통과 영국의 백인 혈통, 그리고 혼혈의 선수들이 골고루 뒤섞인 럭비 대표 팀이 전통의 하카를 함께한 후 다른 나라 대표 팀을 물리치는 걸 생각해 봐요! 어떤 혈통을 가졌든지 간에 '뉴질랜드'라는 이름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뉴질랜드에서 올블랙스는 인기 있는 국가 대표팀일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문화가 서로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인 셈이에요.

하지만 모두가 올블랙스의 하카를 좋게 보는 것은 아니에요. 마오리의 전통을 굳게 지키고 사는 부족들 가운데에는 불만을 갖는 경우도 많아요. 하카의 정신과 의미를 잘 모르는 백인들이 하카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거지요. 그들 입장에서는 조상들의 문화유산인 하카를 구경거리 삼는 게 못마땅할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일부는 올블랙스의 하카가 오히려 마오리와 파케하 사이에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감춘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뉴질랜드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마오리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블랙스의 하카는 두 개의 다른 문화가 어느 한쪽을 흡수하는 대신, 서로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욱 다양한 언어, 관습,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될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한국에서도 ‘올블랙스의 하카'와 같이 다른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스포츠 전통이 생겨나는 걸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